가족과 함께 퇴사를 고민했던 과정

“그만두는 게 어때?” 그 말 한마디가 바꾼 방향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던 밤이었습니다.
몸은 집에 와 있었지만 마음은 회사에 두고 온 느낌이었고, 남아있는 할 일들이 끊임없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저녁과 주말도 업무와 관련된 약속들로 채워져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늘 부족했고,
가끔 일정이 비어 쉴 수 있는 시간이 와도, 걱정이 계속 맴돌아 온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 쌓여가며 꽤 오랜 시간이 지나자 회사에 가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전인데 이미 지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이미 공황 증상이 시작된 것인데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는데, 아내가 조용히 말을 꺼냈습니다.

“그냥 그만두는 게 어때?”


외벌이 가장의 책임감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외국계 대기업에 근무하던 아내는 몇 년 전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이제 저 혼자 벌어서 이 가정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생각해왔습니다.
‘힘들어도 버텨야 한다, 남들도 다 힘든데 버티는 거다.’

그게 가장의 당연한 역할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만두면 뭐 먹고 살 건데?”

그래서 저는 거의 반사적으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만두면 뭐 먹고 살 건데?”

사실상 퇴사를 허락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든 감정은 불안함이었습니다.
아이는 점점 커가고 있고 매달 필요한 소비는 정해져 있는데, 한참 돈을 벌어야 할 나이에 수입이 끊긴다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제가 현실적인 사람이고, 아내는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제야 다르게 들린 말

하지만 그날 이후로 퇴사라는 선택지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들도 같이 따라왔습니다.

‘지금 그만둬도 진짜 괜찮을까’
‘혹시 다시 가난해지는 건 아닐까’
‘내가 선택을 잘못하게 되면 우리 가족은 어떡하지’

책임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리를 누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내는 여러 번 퇴사를 권유했습니다.

“이대로면 큰 병 날 수도 있어. 일단 좀 쉬면서 방법을 찾아보자.”

그때도 저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현실적인 걱정이 더 컸고, 결정을 미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후, 수차례 깊은 고민을 거듭하고 나서야 그 말이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계속 ‘가족’과 ‘가장의 책임감’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제가 버틸 수 있는 상태인지,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을지를 먼저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다

돌이켜보면 가족이 퇴사를 권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장이 힘들어해도 가족을 위해 참고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응원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내와는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퇴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퇴사를 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상의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없이 그만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오랜 시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저는 직속 상사에게 퇴사 의사를 전했습니다.


결국 남은 한 가지 감정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기억에 가장 크게 남은 건 불안도, 고민도 아닌 고마움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했습니다. 아이의 미래도,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전부 저 혼자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은 아내였고, 제가 보지 못한 걸 먼저 눈치 챈 것도 아내였습니다.

퇴사는 결국 혼자 내려야 하는 결정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가족을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수록 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가족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두고 상의해야 한다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만약 아이가 어리지 않다면 아이와 대화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 답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으니, 서두르지 말고 여러 번 대화를 나눠보시길 권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몇 번의 대화를 거치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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