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를 쓰면서 계속 제 시점으로만 그 한 달을 이야기했습니다.
숙소를 고른 기준, 부모님을 모시고 다닌 곳, 한 달 동안 쓴 비용까지 전부 어른의 눈으로 정리한 기록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를 가장 온전히 즐긴 건 저희 부부가 아니라 아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에서 가장 좋아했던 놀이, 파도 피하기
물이 아직 차가워서 제대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해변가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살짝 피하는 놀이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파도가 다가오면 저와 함께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도망갔다가, 파도가 빠지면 다시 앞으로 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별것 아닌 놀이인데,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작은 돌멩이를 주워 바다를 향해 던지기도 하고, 모래에 나뭇가지를 꽂아 세워두고 파도가 밀려와 그걸 쓸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할 수 없는 종류의 놀이였습니다.
장난감 하나 없이도, 규칙 하나 정하지 않고도 아이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습니다.
매번 다른 파도, 매번 다른 돌멩이, 매번 다른 모래의 감촉이 아이에게는 매일 새로운 놀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에게 필요한 건 사실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응은 생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시간표 없는 하루에 아이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금방 적응했습니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라 학교처럼 빡빡한 일과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생각해보면 여유롭던 일상이 빡빡해지는 것보다 그 반대가 적응하기 쉬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최대한 같이 놀아주려 했고, 낯선 풍경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아이가 심심할 틈도 별로 없었습니다.
챙겨간 비디오 게임도 종종 함께했고, 양가 부모님이 일주일씩 다녀가실 때는 또 그 나름의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채워져 갔습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가 아니라, 어제는 바다에 갔다면 오늘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오름을 오르고, 다음 날은 휴식을 취하면서 집에서 게임을 하는 등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리듬이 생겼습니다.
매일매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일정들이 이어지다 보니 아이 입장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돌담길에서 찾은 네잎클로버
숙소 근처 돌담길을 걸을 때면, 아이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습니다.
왜 돌담은 이렇게 낮아서 집이 다 들여다 보이는지, 저 말은 왜 저기 있는지, 대단할 것 없는 질문들이었지만 걸음마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공원 잔디밭에 같이 쪼그려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아본 적도 있었는데, 그날 아이가 정말로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꼽으라면, “바다가 좋다”는 말이었습니다.
거창한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참 여러 번 했습니다.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가 남긴 아쉬움
한 달이 끝나갈 무렵, 아이는 눈에 띄게 아쉬워했습니다.
집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인데도, 집에 조금 더 늦게 가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돌아가기 전날 바닷가에서는 이제 한동안 바다를 못 보겠다며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매일같이 나가던 바닷가를, 이제는 마음먹고 시간을 내야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못내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벌써 4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종종 꺼냅니다.
파도를 피하던 놀이, 네잎클로버를 찾았던 순간이 아이에게는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인 저에게는 지난 한 시절의 기록이지만, 아이와 제주 한달살이는 여전히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한 달의 의미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