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일상을 비워내는 시간
한달살이를 준비하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비워야 할 것들과 챙겨야 할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긴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단순히 짐을 더 챙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상을 비워내는 과정에 더 가까웠습니다.
집을 오래 비운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하나씩 정리해 나갔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는 모두 뽑아두고, 인기척이 없는 집처럼 보이지 않도록 원격으로 불을 켜고 끄는 설정도 해두었습니다.
냉장고도 비워야 했습니다. 아내의 주도로 새로운 식재료를 사기보다는 남아 있는 재료들로 끼니를 해결하며 자연스럽게 비워냈습니다.
비워내는 동시에, 가져갈 짐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한 달 동안 사용할 물건들을 챙기다 보니 짐은 예상보다 훨씬 많아졌고, 차에 모두 실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준비를 마친 건 결국 떠나기 전날 밤이었습니다.
차량 트렁크와 뒷좌석 빈 공간까지 짐을 테트리스를 하듯 빈틈없이 욱여넣다 보니, 몇 번이나 다시 정리한 끝에 겨우 문을 닫을 수 있었습니다. 에어프라이어 같은 생활 가전까지 챙기다 보니 트렁크는 간신히 닫힌 상태였고, 다시 열면 또 닫히지 않을 것 같아 선뜻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쪽잠에서 깨어나 잠들어 있는 아내와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집을 나섰습니다. 새벽 두 시쯤이었습니다.
집에서 나와 마주한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가웠고, 조용한 도로 위로 차를 움직여 목포항으로 향했습니다.
어둠 속을 달리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뒤섞인 생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지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바다를 건너는 시간 : 퀸메리호 차량선적 팁
목포항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차량들이 선적을 위해 줄지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저도 그 흐름에 따라 차량을 선적하고, 배에 올랐습니다.
제가 이용한 배는 퀸메리호였습니다. 객실은 가장 낮은 등급으로 선택했습니다. 혼자 이동하는 일정이기도 했고, 배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바다를 보거나 배 안을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미리 알지 못했던 점이 있었습니다. 선적 이후에는 주차 공간이 통제되기 때문에 이동 중에 자유롭게 차량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피곤하면 차에서 잠시 쉬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저렴한 객실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선적 후에는 차량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에 차에서의 휴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차에 두고 내린 모자와 목배게도 보안요원과 동행하여 겨우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해프닝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배는 천천히 항구를 떠났고, 육지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 순간은 단순한 이동의 순간이라기보다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져 나오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지나 공항에서의 반가운 재회
우리는 함께 움직이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제주로 향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는 비행기로 이동하고, 저는 차를 싣고 배를 타고 갔습니다. 함께 배를 타는 것도 의미가 있었겠지만, 긴 여행의 출발부터 무리한 일정으로 아이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저 혼자 배에 올랐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같은 곳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5시간여의 항해 끝에 제주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아내와 아이는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배에서 차를 내리자마자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몇 시간 전 같은 집에서 출발했지만, 혼자 바닷길을 건너온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공항에서 다시 가족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고, 아이는 밝은 얼굴로 달려왔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음이 놓였습니다.
불과 몇 시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낯선 공간에서 다시 만난 가족은 더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정말 제주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